국가인권위원회
결정
22정책0019
의원면직처분취소 등 청구 사건(대법원 2021두59915)에 관한 의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의결일: 2022년 8월 31일
요지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의원면직처분취소 등 청구 사건(대법원 2021두59915)” 담당재판부에, 이 사건 의원면직처분의 하자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HIV 감염인이자 차별행위 피해자인 원고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위 처분에 중대하고도 명백한 하자가 존재하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함
1. 이 사건 소송의 발단이 HIV 감염 사실에 대한 비밀 보장 및 감염인에 대한 차별 예방 조치가 충분하지 않은 현행 구조·구급대원 정기건강검진 규정으로부터 기인하였고, 현행 규정이 강제적 AIDS 검사의 지양, AIDS 검사 결과의 비밀 유지, 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 금지 등 「AIDS 예방법」의 취지를 준수하였다면, 이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고려할 필요
2.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에게는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 외에 사직의 동기가 전혀 없었던 점, 평택소방서장 등이 원고에게 스스로 사직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낸 점과 함께, 감염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가지는 불안감과 두려움, 합리적 판단을 저해하는 심리상태 등 HIV 감염인으로서 원고가 느꼈을 의사결정 상의 제약 요건 등 원고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
3.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가 불법적인 차별행위의 피해자이고, 평택소방서장 등의 원인 제공이 없었다면 소방공무원을 그만 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음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
1. 이 사건 소송의 발단이 HIV 감염 사실에 대한 비밀 보장 및 감염인에 대한 차별 예방 조치가 충분하지 않은 현행 구조·구급대원 정기건강검진 규정으로부터 기인하였고, 현행 규정이 강제적 AIDS 검사의 지양, AIDS 검사 결과의 비밀 유지, 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 금지 등 「AIDS 예방법」의 취지를 준수하였다면, 이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고려할 필요
2.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에게는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 외에 사직의 동기가 전혀 없었던 점, 평택소방서장 등이 원고에게 스스로 사직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낸 점과 함께, 감염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가지는 불안감과 두려움, 합리적 판단을 저해하는 심리상태 등 HIV 감염인으로서 원고가 느꼈을 의사결정 상의 제약 요건 등 원고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
3.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가 불법적인 차별행위의 피해자이고, 평택소방서장 등의 원인 제공이 없었다면 소방공무원을 그만 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음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
이유
국 가 인 권 위 원 회
결 정
제 목 의원면직처분취소 등 청구 사건(대법원 2021두59915)에
관한 의견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의원면직처분취소 등 청구 사건
(대법원 2021두59915)” 담당재판부에, 이 사건 의원면직처분의 하자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HIV 감염인이자 차별행위 피해자인 원고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위 처분에 중대하고도 명백한 하자가 존재하는지를 살펴 볼 필요
가 있다는 의견을 아래와 같이 제출합니다.
아 래
Ⅰ. 의견 제출의 배경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 2. 22. 이 사건 원고가 평택소방서장 및 경기도지사
를 피진정인으로 하여 제기한 차별 진정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평택소방서장
이 이 사건 원고에게 HIV 감염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사직을 종용하는
등 고용과 관련하여 불리하게 대우하는 차별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
사건 원고의 사직 의사가 의원면직 형태로 표시되기는 하였으나 이는 평택
소방서장의 차별행위로 말미암아 이 사건 원고의 진정한 의사와는 배치
된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 1. 23. 평택소방서장에게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경기도지사
에게는 이 사건 원고의 복직 등 구제가능한 방안을 강구하여 조치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경기도지사가 2019. 6.경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음
에 따라, 이 사건 원고는 2020. 2. 26. 경기도지사의 의원면직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에 대한 무효확인 등을 구하는 소송(이하 "이 사건 소
송"이라 한다)을 제기하였고, 현재 이 사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 소송이 HIV/AIDS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거
없는 공포와 편견이 HIV 감염인들의 헌법상 권리인 평등권을 얼마나 쉽게
침해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보았고, 향후
이 사건 원고와 같이 HIV 감염이 직업상 아무런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법」제28조 제2항에 따라 대법원
담당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하기로 결정하였다.
Ⅱ. 판단 및 참고기준
「대한민국헌법」제11조, 「세계인권선언」제1조 및 제2조, 「경제적·사회
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제2조,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고용
과 직업) 협약」(제111호, 1958), ILO 「HIV/AIDS와 노동의 세계에 관한 권
고」(제200호, 2010),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제3조 및 제8조의2 등
Ⅲ. 이 사건 소송에 관한 의견
1. 현행 구조·구급대원 건강검진 규정의 인권적 문제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의 평등권을 인정하고 있고,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고용과 직업) 협약」(제111호) 등도
모든 사람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고용 또는 직업에
있어서의 모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당사국의 의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ILO 「HIV/AIDS와 노동의 세계에 관한 권고」(제200호)는 어떤 근로자도
HIV/AIDS 검사(이하 "AIDS 검사"라 한다)를 받거나 HIV 감염 여부를 공개
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되고, HIV 감염 여부에 대한 기밀 유지를 포함한
개인정보보호를 받아야 하며, HIV 감염 여부는 고용 모집, 유지, 또는
동등한 기회 추구를 방해하는 차별의 근거나 해고의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된
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고의 내용은 군대 및 제복을 입은 서
비스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인권 기준에 부합하게 우리나라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AIDS 예방법"이라 한다)은 제3조 제5항에서 사용자는 근로자가 HIV 감염인
이라는 이유로 근로관계에 있어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8조의2 제2항에서 검진 결과 통보 시 HIV 감염인
으로 판정받은 사람에게 검진 결과의 비밀이 유지될 수 있는 방법으로
통보할 것을, 제3항에서 근로자에 대한 사업주의 후천성면역결핍증(이하
"AIDS"라 한다) 검진결과서 제출 요구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한편, 119구조·구급대원에 대한 건강검진 실시 및 검진항목에 대해 규정
하고 있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이하 "119법"이라 한다) 제23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27조 제1항, 그리고 같은 법 시행규칙 제22조와 별표는
구조·구급대원에게 AIDS 검사가 필수적 항목으로 포함된 정기건강검진을
연 2회 받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119법 시행령」제27조 제3항은 정기건강
검진 결과 구조·구급대원으로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대원에 대하여 구조·
구급대원으로서의 배치를 중지하고 건강 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소방청장·소방본부장 또는 소방서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구조·구급대원의 정기건강검진 관련 현행 규정은, 이 사건 소송 원심
재판부도 인정하였듯이, “원칙적으로 구조·구급대원의 안전사고방지대책
등을 위한 규정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건강검진 항목에 AIDS 검사를 포함
한 것도 “구조·구급대원이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말미암아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구조·구급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감염병에 노출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정기건강검진 결과 구조·구급대원으로 부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구조·구급대원으로서의 배치를
중지하고 건강회복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넘어 이를 이유로
당해 구조·구급대원에게 신분상, 인사상 또는 그 밖의 영역에서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문 14쪽).
그러나 현행 규정은 구조·구급대원들에게 AIDS 검사를 필수적으로
받도록 하고만 있을 뿐, AIDS 검사와 결과 통보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비밀을 유지하는 방법과 절차, AIDS 검사 결과 구조·구급대원
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 AIDS 검사 결과
양성일 경우 구조·구급대원의 건강회복을 위해 기관이 취해야 하는 조치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AIDS 예방법」제8조의2 제2항 및
제3항과 ILO의 「HIV/AIDS와 노동의 세계에 관한 권고」를 위반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
이 사건 소송 원고의 경우도 HIV 감염인이긴 하나 유효적절한 치료를
받아 전염성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건강검진센터로부터 최초 통보받은
건강검진결과표상 AIDS 항목에 HIV 병원체 보유자인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에 원고는 AIDS 항목이 공란으로 되어 있는 결과표를 새로 발급
받아 제출하였지만, 원고의 결과표에만 AIDS 항목이 공란으로 되어 있어
그 자체만으로 원고는 HIV 감염인이 아닌 다른 구급대원들과 구별되었고,
소방서 측에서 공란의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원고는 본인의 감염 사실
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현행 규정은 구조·구급대원이 AIDS로 말미암아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구조·구급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감염병에 노출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모든 구조·구급대원들로
하여금 연 2회 AIDS에 관한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효과를 낳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 사건 소송의 발단이 HIV 감염 사실에 대한 비밀 보장
및 감염인에 대한 차별 예방 조치가 충분하지 않은 현행 구조·구급대원
정기건강검진 규정으로부터 기인하였고, 현행 규정이 강제적 AIDS 검사의
지양, AIDS 검사 결과의 비밀 유지, 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 금지 등
「AIDS 예방법」의 취지를 준수하였다면, 이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이 사건 소송 담당재판부가 충분히 인지하고 고려할 필
요가 있다.
2.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 판단 시 HIV 감염인인 원고의 특수성 고려할 필요
가. HIV 감염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법원의 역할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은 HIV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을 규명하고 이
들의 노동권을 포함한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어 법원의 역할이 매
우 중요함을 환기시키고 있는데, HIV와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차별을 방지
하기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HIV 감염인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ILO, 「HIV, AIDS 및 노
동권 : 법관과 법률전문가를 위한 핸드북」, 2015 ; 유엔, 「HIV, 인권과 법에
관한 핸드북」, 2013).
이러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는 사법부에게 주어진 본질적
사명으로 단순히 형식적인 법치가 아닌 실질적인 법치를 실현하기를 원하는
국민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법원 역시 차별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심리 기준으로 "성인지
감수성", 즉 사건에 대한 심리 및 판단에서 차별의 맥락을 이해하고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 판결 등).
나. 평택소방서장 등의 사직 강요 개연성 면밀히 살필 필요
이 사건 소송 원심은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는 원고가 평택소방서장,
소방행정팀장(이하 "평택소방서장 등"이라 한다)의 강요 또는 기망에 의하여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 또는 제한당한 상태에서 사직의 의사표시를 하였
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고 그 위법이 명백, 중대한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 사건 소송 원고의 주장 및 진술의 일관성,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 외에 사직의 동기가 존재하는지 여부, 평택소방서장 등이 국가인권
위원회에 제출한 사실관계진술서 및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감사 당시 진술한
내용, 원고와 평택소방서 소속 현장대응단 팀장과의 대화 녹취록, 기타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택소방서장 등은 2018. 4. 19.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사실관계진술서
(갑 제18호증)에서 원고와 평택소방서 소방행정팀장, 현장대응단 팀장(이하
"소방행정팀장 등"이라 한다)과의 1차 면담 시 소방행정팀장 등이 원고에게
퇴직금이나 자진사퇴에 관한 이야기를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원고
에게 "1주일간 시간을 주겠다"고 말한 부분은 인정하였다.
그리고 원고는 이 사건 소송 1심 당시 증언(2020. 11. 5.)에서 1차 면담
이후 평택소방서장, 소방행정팀장과의 2차 면담이 있기까지의 1주일간 HIV
감염인의 경우 정말로 구급대원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 전화 상담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진술하였으며, 원고의 이러한
진술은 이 사건 소송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된 한국HIV/AIDS 감염인연합회
KNP+의 상담확인서(갑 제3호증)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러한 진술과 증거에 기초할 때, 1차 면담 당시 소방행정팀장 등이
어떠한 형태로든 원고에게 HIV 감염인은 소방공무원 업무를 계속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고 "1주일간의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 사직 결정을 위한 고민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볼 개연성이
상당하다.
또한 원고는 위 증언 당시 "1차 면담 이후 나름대로 법령을 찾아봤는데
HIV 감염이 소방공무원의 결격사유나 당연퇴직 사유는 아닌 것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고 진술하고 있고,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2차 면담 시 주치의
소견서와 진료내역, 혈액검사결과지 등을 보여주며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2차 면담 당시 원고가 구급대원이 아닌 다른 직위로의 전보
가능 여부에 대하여 질문하자 소방행정팀장이 원고의 경우 경력채용자여서
3년 이내에는 전보가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하였다. 이로부터 원고는 평택
소방서장 등과의 2차 면담 시에도 계속하여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고자
하는 의사가 강하게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원고의 강한 계속 근무 의사가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2차
면담 이후 급격히 사직으로 기울었다는 점, 그리고 현장대응단 팀장이 "당시
원고의 HIV 감염 사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면 무조건
면직처리가 되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 전에 사직을 하게 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는 점(갑 제7호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원고가
사직의 의사를 형성·표시하는 과정에 평택소방서장 등의 실질적인 사직
강요가 있었다고 볼 개연성은 없는지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다.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에서도 HIV 감염인인 원고의 특수성
고려할 필요
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은 이 사건 청구취지 중 “손해배상 청구”와 관
련한 불법행위 해당 여부를 살핌에 있어서는, 아래와 같이 평택소방서장 등
의 진술이나 행위에 내포된 의미, HIV 감염인인 원고가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에서 가졌을 심리상태, 원고와 평택소방서장 등의 직장에서의 관계 등
이 사건 발생 당시 원고가 처한 상황적 맥락과 개인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
하였다.
○ 평택소방서장이 원고에게 계속 근무할지 여부를 심사숙고하여 결정
해달라고 말한 것은 순수하게 중립적 입장에서 원고로 하여금 계속
근무할지, 사직할지 여부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도록 권고한 것이
아니라 원고로 하여금 스스로 사직하도록 그 결심을 유도·설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 "원고가 구급대원으로서 부적합하므로 스스로 사직하면 좋겠다"는
관리자의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 원고에게 사직을 권고한 것은 119구조·구급대원 중 HIV 감염인이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평택소방서나 119구조·구급대
의 신뢰 하락 등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 2017. 7. 18. 원고와 현장대응단 팀장이 나눈 대화 내용에 비추어보면,
면담 당시 퇴직금이든 다른 부분이든, 의원면직을 할 경우 원고에
게 유리한 점과 반대로 직권면직이 될 경우 원고에게 불리한 점
에 관하여 언급이 이루어졌음을 넉넉히 추론할 수 있다.
○ 경력 2년 남짓의 소방공무원 최하위직급에 있는 원고와 원고에 대한
지휘·감독권자인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관계에 비추어볼 때 해당
면담을 단지 의견교환, 상담, 정보 제공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 HIV 감염인인 원고로서는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직장에 알려져
평택소방서장과 자신의 사직 여부에 대하여 면담하는 것 자체만으
로도 매우 위축된 상태였을 것이며 원고가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기 어려운 심리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 이 사건 면직처분이 있기 전까지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 이외에
원고가 소방공무원을 그만둘 만한 동기나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이상
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문 16~19쪽).
그런데, 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은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를 살핌에
있어서는, HIV 감염인인 원고의 특수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개인이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약받는 정도는 강압의 양태나 정도 등 상대방의 행
위에 의해 영향을 받겠지만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특성에 따라 그 정도에
편차가 발생할 여지가 있어 일률적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법원은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평택소방서장 등의 불법행위 해당 여부에 대해 판단할 때만이
아니라,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에도 이 사건 발생 당시 원고가
처한 "상황적 맥락과 개인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HIV 감염인들은 감염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늘 불안과
걱정을 가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염인(HIV/AIDS) 의료차별 실태
조사」(2016)에 따르면, HIV 감염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으로
"감염사실이 알려질 걱정"(92.1%), "건강악화에 대한 불안감"(87.7%), "경제적
어려움"(84.2%) 순으로 응답하였다. 또한 한국 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의 「HIV 낙인지표조사」(2017)에 의하면, HIV 감염인들은 "나에 대한
소문이 나는 것"(78.8%)을 가장 두려워하였고, HIV 감염으로 인한 자살
충동을 느낀 비율이 36.5%로 HIV 감염인 3명 중 1명꼴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조사되었다.
이처럼 HIV 감염인들이 감염 사실 누설에 특별히 불안감을 가지는
이유는, 주위에 감염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 순간 직장은 물론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과 낙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HIV 감염률은
전 세계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나 HIV/AIDS 관련 사회적 무지, 공포나
낙인은 심각한 편이고, 그에 따라 HIV/AIDS 감염인들이 가지는 내재적
낙인의 정도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상과 같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 상황을
고려할 때, 평택소방서장 등의 행위에 대해 일반인이 느끼는 의사결정의
제약 정도와 원고가 느꼈을 제약 정도를 동일하게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적 맥락과 원고의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면,
당시 원고로서는 직권면직과 의원면직 중 어떤 선택을 하든 소방공무원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선택지에 큰 차이가 없었고, 직권면직의 경우
일을 계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본인의 HIV 감염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게
되는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했기에, 당시 원고에게는 의원면직 외에 진정한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의 "의사결정의 자유"는 현저히
제압된 상태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에게는 평택소
방서장 등과의 면담 외에 사직의 동기가 전혀 없었던 점, 평택소방서장 등
이 원고에게 스스로 사직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낸 점과 함께,
감염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가지는 불안감과 두려움, 합리적
판단을 저해하는 심리상태 등 HIV 감염인으로서 원고가 느꼈을 의사결정
상의 제약 요건 등 원고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3.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 판단 시 불법적 차별행위의 피해자인 원고의
특수성 고려할 필요
이 사건 소송 원심이 인정하였듯이, 원고가 사직의 의사가 없었음에도 결국
사직서를 작성·제출한 배경에는 평택소방서장 등 관계 공무원의 불법적
차별행위가 큰 영향을 주었으므로, 원고의 의원면직 의사가 자의가 아님은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실제 직권면직 사유에 해당하는 자가 의원면직과 직권면직 각각의 경우의
유불리를 따져 그 중 하나의 선택지로서 의원면직을 결정한 것이라면 이러한
의사표시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결과로서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나, 이 사건 원고는 단지 HIV 감염인이
라는 이유만으로 평택소방서장 등 상급자로부터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당한 피해자이고, 원고의 사직서 제출은 그러한 위법한 차별행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평택소방서장 등은 원고와 면담에 임하기 전에 관계 법령을 면밀히 검토
하거나 상급기관 내지 법률전문가에게 문의하는 등으로 HIV 감염이 소방
공무원으로서 결격사유 또는 직권면직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였다. 또한 구조·구급대원의 직무 특성상 다른
직업군과 달리 법정전염병에 대한 특별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HIV 감염이 확인된 원고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바이러스 수치를 보고하게
하고, 바이러스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구조·구급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감염병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상태가
되면 그때 비로소 배치를 중지하고 건강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등으로 이에 대한 관리 및 대처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대처하지 아니하고 원고에게 계속하여 사직을 종용하여
원고로 하여금 의원면직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원고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어쩔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이를 수리함으로써 원고에게 의사
표시 철회를 위한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았다.
이 사건 소송 원심 재판부가 평택소방서장 등의 불법적 차별행위를 인정
하였음에도, 면직이라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불법행위의 피해자인 원고에게
모두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고 가혹한 측면이 있다. 이 사건 소송 원심이
평택소방서장 등의 불법적 차별행위를 인정하여 1천만원의 위자료 배상을
선고하기는 하였으나, 이와 같은 위자료 배상으로는 이 사건 원고가 소방
공무원이 되기 위해 쏟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소방공무원으로 계속하여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
개인에게 직업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인바,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가
불법적인 차별행위의 피해자이고, 평택소방서장 등의 원인 제공이 없었다면
소방공무원을 그만 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음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Ⅳ. 결론
이상과 같은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법」제28조 제2항에 따라 대법원
담당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한다.
결 정
제 목 의원면직처분취소 등 청구 사건(대법원 2021두59915)에
관한 의견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의원면직처분취소 등 청구 사건
(대법원 2021두59915)” 담당재판부에, 이 사건 의원면직처분의 하자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HIV 감염인이자 차별행위 피해자인 원고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위 처분에 중대하고도 명백한 하자가 존재하는지를 살펴 볼 필요
가 있다는 의견을 아래와 같이 제출합니다.
아 래
Ⅰ. 의견 제출의 배경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 2. 22. 이 사건 원고가 평택소방서장 및 경기도지사
를 피진정인으로 하여 제기한 차별 진정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평택소방서장
이 이 사건 원고에게 HIV 감염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사직을 종용하는
등 고용과 관련하여 불리하게 대우하는 차별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
사건 원고의 사직 의사가 의원면직 형태로 표시되기는 하였으나 이는 평택
소방서장의 차별행위로 말미암아 이 사건 원고의 진정한 의사와는 배치
된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 1. 23. 평택소방서장에게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경기도지사
에게는 이 사건 원고의 복직 등 구제가능한 방안을 강구하여 조치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경기도지사가 2019. 6.경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음
에 따라, 이 사건 원고는 2020. 2. 26. 경기도지사의 의원면직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에 대한 무효확인 등을 구하는 소송(이하 "이 사건 소
송"이라 한다)을 제기하였고, 현재 이 사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 소송이 HIV/AIDS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거
없는 공포와 편견이 HIV 감염인들의 헌법상 권리인 평등권을 얼마나 쉽게
침해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보았고, 향후
이 사건 원고와 같이 HIV 감염이 직업상 아무런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법」제28조 제2항에 따라 대법원
담당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하기로 결정하였다.
Ⅱ. 판단 및 참고기준
「대한민국헌법」제11조, 「세계인권선언」제1조 및 제2조, 「경제적·사회
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제2조,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고용
과 직업) 협약」(제111호, 1958), ILO 「HIV/AIDS와 노동의 세계에 관한 권
고」(제200호, 2010),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제3조 및 제8조의2 등
Ⅲ. 이 사건 소송에 관한 의견
1. 현행 구조·구급대원 건강검진 규정의 인권적 문제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의 평등권을 인정하고 있고,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고용과 직업) 협약」(제111호) 등도
모든 사람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고용 또는 직업에
있어서의 모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당사국의 의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ILO 「HIV/AIDS와 노동의 세계에 관한 권고」(제200호)는 어떤 근로자도
HIV/AIDS 검사(이하 "AIDS 검사"라 한다)를 받거나 HIV 감염 여부를 공개
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되고, HIV 감염 여부에 대한 기밀 유지를 포함한
개인정보보호를 받아야 하며, HIV 감염 여부는 고용 모집, 유지, 또는
동등한 기회 추구를 방해하는 차별의 근거나 해고의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된
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고의 내용은 군대 및 제복을 입은 서
비스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인권 기준에 부합하게 우리나라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AIDS 예방법"이라 한다)은 제3조 제5항에서 사용자는 근로자가 HIV 감염인
이라는 이유로 근로관계에 있어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8조의2 제2항에서 검진 결과 통보 시 HIV 감염인
으로 판정받은 사람에게 검진 결과의 비밀이 유지될 수 있는 방법으로
통보할 것을, 제3항에서 근로자에 대한 사업주의 후천성면역결핍증(이하
"AIDS"라 한다) 검진결과서 제출 요구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한편, 119구조·구급대원에 대한 건강검진 실시 및 검진항목에 대해 규정
하고 있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이하 "119법"이라 한다) 제23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27조 제1항, 그리고 같은 법 시행규칙 제22조와 별표는
구조·구급대원에게 AIDS 검사가 필수적 항목으로 포함된 정기건강검진을
연 2회 받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119법 시행령」제27조 제3항은 정기건강
검진 결과 구조·구급대원으로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대원에 대하여 구조·
구급대원으로서의 배치를 중지하고 건강 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소방청장·소방본부장 또는 소방서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구조·구급대원의 정기건강검진 관련 현행 규정은, 이 사건 소송 원심
재판부도 인정하였듯이, “원칙적으로 구조·구급대원의 안전사고방지대책
등을 위한 규정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건강검진 항목에 AIDS 검사를 포함
한 것도 “구조·구급대원이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말미암아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구조·구급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감염병에 노출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정기건강검진 결과 구조·구급대원으로 부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구조·구급대원으로서의 배치를
중지하고 건강회복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넘어 이를 이유로
당해 구조·구급대원에게 신분상, 인사상 또는 그 밖의 영역에서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문 14쪽).
그러나 현행 규정은 구조·구급대원들에게 AIDS 검사를 필수적으로
받도록 하고만 있을 뿐, AIDS 검사와 결과 통보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비밀을 유지하는 방법과 절차, AIDS 검사 결과 구조·구급대원
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 AIDS 검사 결과
양성일 경우 구조·구급대원의 건강회복을 위해 기관이 취해야 하는 조치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AIDS 예방법」제8조의2 제2항 및
제3항과 ILO의 「HIV/AIDS와 노동의 세계에 관한 권고」를 위반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
이 사건 소송 원고의 경우도 HIV 감염인이긴 하나 유효적절한 치료를
받아 전염성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건강검진센터로부터 최초 통보받은
건강검진결과표상 AIDS 항목에 HIV 병원체 보유자인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에 원고는 AIDS 항목이 공란으로 되어 있는 결과표를 새로 발급
받아 제출하였지만, 원고의 결과표에만 AIDS 항목이 공란으로 되어 있어
그 자체만으로 원고는 HIV 감염인이 아닌 다른 구급대원들과 구별되었고,
소방서 측에서 공란의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원고는 본인의 감염 사실
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현행 규정은 구조·구급대원이 AIDS로 말미암아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구조·구급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감염병에 노출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모든 구조·구급대원들로
하여금 연 2회 AIDS에 관한 검진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효과를 낳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 사건 소송의 발단이 HIV 감염 사실에 대한 비밀 보장
및 감염인에 대한 차별 예방 조치가 충분하지 않은 현행 구조·구급대원
정기건강검진 규정으로부터 기인하였고, 현행 규정이 강제적 AIDS 검사의
지양, AIDS 검사 결과의 비밀 유지, 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 금지 등
「AIDS 예방법」의 취지를 준수하였다면, 이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이 사건 소송 담당재판부가 충분히 인지하고 고려할 필
요가 있다.
2.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 판단 시 HIV 감염인인 원고의 특수성 고려할 필요
가. HIV 감염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법원의 역할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은 HIV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을 규명하고 이
들의 노동권을 포함한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어 법원의 역할이 매
우 중요함을 환기시키고 있는데, HIV와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차별을 방지
하기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HIV 감염인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ILO, 「HIV, AIDS 및 노
동권 : 법관과 법률전문가를 위한 핸드북」, 2015 ; 유엔, 「HIV, 인권과 법에
관한 핸드북」, 2013).
이러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는 사법부에게 주어진 본질적
사명으로 단순히 형식적인 법치가 아닌 실질적인 법치를 실현하기를 원하는
국민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법원 역시 차별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심리 기준으로 "성인지
감수성", 즉 사건에 대한 심리 및 판단에서 차별의 맥락을 이해하고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 판결 등).
나. 평택소방서장 등의 사직 강요 개연성 면밀히 살필 필요
이 사건 소송 원심은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는 원고가 평택소방서장,
소방행정팀장(이하 "평택소방서장 등"이라 한다)의 강요 또는 기망에 의하여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 또는 제한당한 상태에서 사직의 의사표시를 하였
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고 그 위법이 명백, 중대한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 사건 소송 원고의 주장 및 진술의 일관성,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 외에 사직의 동기가 존재하는지 여부, 평택소방서장 등이 국가인권
위원회에 제출한 사실관계진술서 및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감사 당시 진술한
내용, 원고와 평택소방서 소속 현장대응단 팀장과의 대화 녹취록, 기타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택소방서장 등은 2018. 4. 19.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사실관계진술서
(갑 제18호증)에서 원고와 평택소방서 소방행정팀장, 현장대응단 팀장(이하
"소방행정팀장 등"이라 한다)과의 1차 면담 시 소방행정팀장 등이 원고에게
퇴직금이나 자진사퇴에 관한 이야기를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원고
에게 "1주일간 시간을 주겠다"고 말한 부분은 인정하였다.
그리고 원고는 이 사건 소송 1심 당시 증언(2020. 11. 5.)에서 1차 면담
이후 평택소방서장, 소방행정팀장과의 2차 면담이 있기까지의 1주일간 HIV
감염인의 경우 정말로 구급대원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 전화 상담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진술하였으며, 원고의 이러한
진술은 이 사건 소송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된 한국HIV/AIDS 감염인연합회
KNP+의 상담확인서(갑 제3호증)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러한 진술과 증거에 기초할 때, 1차 면담 당시 소방행정팀장 등이
어떠한 형태로든 원고에게 HIV 감염인은 소방공무원 업무를 계속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고 "1주일간의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 사직 결정을 위한 고민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볼 개연성이
상당하다.
또한 원고는 위 증언 당시 "1차 면담 이후 나름대로 법령을 찾아봤는데
HIV 감염이 소방공무원의 결격사유나 당연퇴직 사유는 아닌 것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고 진술하고 있고,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2차 면담 시 주치의
소견서와 진료내역, 혈액검사결과지 등을 보여주며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2차 면담 당시 원고가 구급대원이 아닌 다른 직위로의 전보
가능 여부에 대하여 질문하자 소방행정팀장이 원고의 경우 경력채용자여서
3년 이내에는 전보가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하였다. 이로부터 원고는 평택
소방서장 등과의 2차 면담 시에도 계속하여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고자
하는 의사가 강하게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원고의 강한 계속 근무 의사가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2차
면담 이후 급격히 사직으로 기울었다는 점, 그리고 현장대응단 팀장이 "당시
원고의 HIV 감염 사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면 무조건
면직처리가 되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 전에 사직을 하게 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는 점(갑 제7호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원고가
사직의 의사를 형성·표시하는 과정에 평택소방서장 등의 실질적인 사직
강요가 있었다고 볼 개연성은 없는지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다.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에서도 HIV 감염인인 원고의 특수성
고려할 필요
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은 이 사건 청구취지 중 “손해배상 청구”와 관
련한 불법행위 해당 여부를 살핌에 있어서는, 아래와 같이 평택소방서장 등
의 진술이나 행위에 내포된 의미, HIV 감염인인 원고가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에서 가졌을 심리상태, 원고와 평택소방서장 등의 직장에서의 관계 등
이 사건 발생 당시 원고가 처한 상황적 맥락과 개인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
하였다.
○ 평택소방서장이 원고에게 계속 근무할지 여부를 심사숙고하여 결정
해달라고 말한 것은 순수하게 중립적 입장에서 원고로 하여금 계속
근무할지, 사직할지 여부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도록 권고한 것이
아니라 원고로 하여금 스스로 사직하도록 그 결심을 유도·설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 "원고가 구급대원으로서 부적합하므로 스스로 사직하면 좋겠다"는
관리자의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 원고에게 사직을 권고한 것은 119구조·구급대원 중 HIV 감염인이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평택소방서나 119구조·구급대
의 신뢰 하락 등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 2017. 7. 18. 원고와 현장대응단 팀장이 나눈 대화 내용에 비추어보면,
면담 당시 퇴직금이든 다른 부분이든, 의원면직을 할 경우 원고에
게 유리한 점과 반대로 직권면직이 될 경우 원고에게 불리한 점
에 관하여 언급이 이루어졌음을 넉넉히 추론할 수 있다.
○ 경력 2년 남짓의 소방공무원 최하위직급에 있는 원고와 원고에 대한
지휘·감독권자인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관계에 비추어볼 때 해당
면담을 단지 의견교환, 상담, 정보 제공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 HIV 감염인인 원고로서는 자신이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직장에 알려져
평택소방서장과 자신의 사직 여부에 대하여 면담하는 것 자체만으
로도 매우 위축된 상태였을 것이며 원고가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기 어려운 심리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 이 사건 면직처분이 있기 전까지 평택소방서장 등과의 면담 이외에
원고가 소방공무원을 그만둘 만한 동기나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이상
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문 16~19쪽).
그런데, 이 사건 소송 원심 판결은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를 살핌에
있어서는, HIV 감염인인 원고의 특수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개인이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약받는 정도는 강압의 양태나 정도 등 상대방의 행
위에 의해 영향을 받겠지만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특성에 따라 그 정도에
편차가 발생할 여지가 있어 일률적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법원은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평택소방서장 등의 불법행위 해당 여부에 대해 판단할 때만이
아니라,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에도 이 사건 발생 당시 원고가
처한 "상황적 맥락과 개인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HIV 감염인들은 감염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늘 불안과
걱정을 가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염인(HIV/AIDS) 의료차별 실태
조사」(2016)에 따르면, HIV 감염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으로
"감염사실이 알려질 걱정"(92.1%), "건강악화에 대한 불안감"(87.7%), "경제적
어려움"(84.2%) 순으로 응답하였다. 또한 한국 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의 「HIV 낙인지표조사」(2017)에 의하면, HIV 감염인들은 "나에 대한
소문이 나는 것"(78.8%)을 가장 두려워하였고, HIV 감염으로 인한 자살
충동을 느낀 비율이 36.5%로 HIV 감염인 3명 중 1명꼴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조사되었다.
이처럼 HIV 감염인들이 감염 사실 누설에 특별히 불안감을 가지는
이유는, 주위에 감염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 순간 직장은 물론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과 낙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HIV 감염률은
전 세계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나 HIV/AIDS 관련 사회적 무지, 공포나
낙인은 심각한 편이고, 그에 따라 HIV/AIDS 감염인들이 가지는 내재적
낙인의 정도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상과 같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 상황을
고려할 때, 평택소방서장 등의 행위에 대해 일반인이 느끼는 의사결정의
제약 정도와 원고가 느꼈을 제약 정도를 동일하게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적 맥락과 원고의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면,
당시 원고로서는 직권면직과 의원면직 중 어떤 선택을 하든 소방공무원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선택지에 큰 차이가 없었고, 직권면직의 경우
일을 계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본인의 HIV 감염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게
되는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했기에, 당시 원고에게는 의원면직 외에 진정한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의 "의사결정의 자유"는 현저히
제압된 상태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에게는 평택소
방서장 등과의 면담 외에 사직의 동기가 전혀 없었던 점, 평택소방서장 등
이 원고에게 스스로 사직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낸 점과 함께,
감염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가지는 불안감과 두려움, 합리적
판단을 저해하는 심리상태 등 HIV 감염인으로서 원고가 느꼈을 의사결정
상의 제약 요건 등 원고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
3. 이 사건 처분의 위법성 판단 시 불법적 차별행위의 피해자인 원고의
특수성 고려할 필요
이 사건 소송 원심이 인정하였듯이, 원고가 사직의 의사가 없었음에도 결국
사직서를 작성·제출한 배경에는 평택소방서장 등 관계 공무원의 불법적
차별행위가 큰 영향을 주었으므로, 원고의 의원면직 의사가 자의가 아님은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실제 직권면직 사유에 해당하는 자가 의원면직과 직권면직 각각의 경우의
유불리를 따져 그 중 하나의 선택지로서 의원면직을 결정한 것이라면 이러한
의사표시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결과로서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나, 이 사건 원고는 단지 HIV 감염인이
라는 이유만으로 평택소방서장 등 상급자로부터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당한 피해자이고, 원고의 사직서 제출은 그러한 위법한 차별행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평택소방서장 등은 원고와 면담에 임하기 전에 관계 법령을 면밀히 검토
하거나 상급기관 내지 법률전문가에게 문의하는 등으로 HIV 감염이 소방
공무원으로서 결격사유 또는 직권면직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였다. 또한 구조·구급대원의 직무 특성상 다른
직업군과 달리 법정전염병에 대한 특별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HIV 감염이 확인된 원고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바이러스 수치를 보고하게
하고, 바이러스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구조·구급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감염병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상태가
되면 그때 비로소 배치를 중지하고 건강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등으로 이에 대한 관리 및 대처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대처하지 아니하고 원고에게 계속하여 사직을 종용하여
원고로 하여금 의원면직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원고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어쩔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이를 수리함으로써 원고에게 의사
표시 철회를 위한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았다.
이 사건 소송 원심 재판부가 평택소방서장 등의 불법적 차별행위를 인정
하였음에도, 면직이라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불법행위의 피해자인 원고에게
모두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고 가혹한 측면이 있다. 이 사건 소송 원심이
평택소방서장 등의 불법적 차별행위를 인정하여 1천만원의 위자료 배상을
선고하기는 하였으나, 이와 같은 위자료 배상으로는 이 사건 원고가 소방
공무원이 되기 위해 쏟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소방공무원으로 계속하여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
개인에게 직업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인바, 이 사건 처분의 하자 여부 판단 시 이 사건 원고가
불법적인 차별행위의 피해자이고, 평택소방서장 등의 원인 제공이 없었다면
소방공무원을 그만 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음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Ⅳ. 결론
이상과 같은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법」제28조 제2항에 따라 대법원
담당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한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신청인·피심인 등 당사자 칸은 따로 싣지 않습니다(본문의 이름은 원천이 가린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