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법원 민사

95카합3728

건물훼손및철거금지가처분

법원: 서울지방법원 선고일: 1995년 9월 18일 선고: 자

판결 전문

【신 청 인】
【피신청인】 대한민국외 1
【주 문】
1. 이 사건 신청을 모두 각하한다.
2. 신청비용은 신청인들의 부담으로 한다.

【이 유】 1. 신청인들의 주장
신청인들은, 피신청인 대한민국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별지목록기재 건물(이하 이 사건 건물이라고 한다)의 철거공사를 피신청인 현대건설 주식회사(이하 피신청인 현대건설이라고만 한다)에게 도급을 주어, 1995. 8. 15.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이 사건 건물의 첨탑을 제거하여 이를 훼손하고 종국적으로는 이를 철거하려는 공사를 진행 중인데, 이 사건 건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서 중요한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조선침략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한국인과 일본인, 나아가 전세계 인류에게 일제침략의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산 교훈이 되고 있으며, 제헌의회의 개회식 및 초대대통령의 취임식 장소, 9. 28. 수복의 상징, 역대 정부청사로 사용된 점 등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높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 및 정치사적 의미를 가지는 유서깊은 건물로서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과정을 말해 주고 있어서, 신청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적보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1995. 8. 11. 문화체육부 산하 문하재관리국장에게 이 사건 건물을
문화재보호법 제6조,
같은 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1조 별표 1 소정의 ‘사적’으로 지정하여 줄 것을 청원하였는바, 피신청인들의 이 사건 건물에 대한 훼손 또는 철거를 금지하지 아니하는 경우 이 사건 건물내에 소장중인 문화재의 보존에 큰 차질을 가져옴으로써 문화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청인들의 이익을 해할 뿐 아니라 신청인들의 청원에 따라 사적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이 사건 건물의 사적으로서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별도의 장소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완공되어 소장중인 문화재를 이전하여도 보존에 지장이 없는 시기까지 또는 사적으로서의 지정여부가 결정되기 이전까지 위 철거공사의 금지를 구한다.

2. 피신청인 대한민국의 주장
이에 대한 피신청인 대한민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가. 이 사건 건물의 건축배경 및 연혁
이 사건 건물은 일제가 우리민족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조선을 영원히 식민통치하고자 조선왕조의 정국인 경복궁 중심부의 4,000여 칸에 달하는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청사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축한 것으로, 1916. 6. 경 착공되어 1926. 1. 경 준공되었다. 해방 후 1948. 8. 경부터는 정부종합청사로 사용되었고, 1986. 8. 21. 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 이 사건 건물의 문화재적 가치 및 현상태
이 사건 건물은 르네상스 양식에 근거한 절충식 건물로 구조는 철근콘크리트 라멘조이고, 외부는 습식공법으로 화강석을 붙였고, 내부에는 인조석 또는 시멘트 몰탈로 마감처리가 되어 있는데, 6. 25. 당시 많은 피해를 입어 여러번 수리를 하였으나 건물일부에 금이 가고 지붕의 누수현상도 확대되고 있어 조만간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필요한 상태이다.
다. 이 사건 건물 철거의 역사적 필요성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사건 건물은 일제가 우리민족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조선을 영원히 식민통치하고자 민족의 정기를 담은 조선왕조의 가장 격조 높은 정궁인 경복궁 중심부에 조선총독부청사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축한 것이고,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복궁의 경관을 정면으로 막아 문화재의 환경을 저해하고 있는바, 대망의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일제에 의하여 잃어버렸던 우리민족의 역사를 되찾고 짓밟힌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하며 훼손된 경복궁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문화유산을 올바로 보존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요청이 드높아짐에 따라 정부는 이 사건 건물의 철거와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의 건립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또한 비록 해방이후 이 사건 건물에서 제헌의회가 개원되고 40여 년간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서 있었지만, 이 사건 건물은 국민들에게 기쁨과 희망보다는 강제통치와 무력지배의 상징으로서 우리민족의 고난과 한이 서린 건물로 인식되어 왔다.
요컨대, 이 사건 건물의 건축배경과 이 사건 건물이 우리민족에게 그동안 끼친 고통과 영향 등을 감안하여 보면, 이 사건 건물의 철거는 우리의 의식속에 남아있는 그릇된 역사의 잔재로부터 해방되어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한일 두나라가 불행했던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기 위하여, 언젠가, 누군가에 의하여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우리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다.
라. 이 사건 건물 철거 합의의 도출과정
위와 같은 이 사건 건물 철거의 역사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 사건 건물의 철거에 소요되는 방대한 비용, 철거주장과 반대주장의 팽팽한 대립 등 많은 논란이 있어서, 제1공화국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일제통치의 상징인 이 사건 건물을 헐어버리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으나 경제적 여건으로 철거하지 못하였고, 1986. 8. 21. 제5공화국 정부는 이 사건 건물을 정부종합청사에서 국립중앙발물관으로 용도를 변경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1990. 6. 경 제6공화국 정부는 경복궁복원사업과 연계하여 이 사건 건물의 이전을 검토하면서, 1991. 6. 경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자 및 전문가들중 77%, 일반시민 중 65%가 철거에 찬성하였고, 현 정부는 1993. 8. 8. 이 사건 건물을 철거하라는 김영삼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93. 9. 23. ‘구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자문회의’를 구성하여 철거방법 등을 논의하는 한편, 1993. 10. 19. 문화체육부 소관으로 ‘구 조선총독부건물 철거계획’, ‘국립중앙박물관 임시이전계획’을 수립하고, 그 무렵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계획’을 세운 다음, 1993. 11. 10. 문화재위원, 한국고고학회 등 11개 학회, 광복회 등 5개 단체와 다수의 일반시민들의 참석하에 공청회를 개최한 결과, 이 사건 건물을 1996. 8. 15.까지 철거하고 그 소장 문화재는 이 사건 건물 경내에 위치한 사회교육관 건물을 증축하여 임시로 이전하여 전시하고 2000. 8. 15.까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에 있는 용산가족공원내에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건립하기로 의견을 종합하였다. 그후 피신청인 현대건설은 1994. 7. 22. 이 사건 건물의 철거공사를 낙찰받았다.
마. 소장 문화재의 안전문제에 관하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화재 120,000여 점 중 이 사건 건물에는 현재 문화재적 가치가 크고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5,500여 점만이 전시되어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유물은 이 사건 건물로부터 동쪽으로 약 50m, 지하 약 15m 정도 지점에 있는 지하 수장고 및 지방박물관에 보관 중인바, 위 지하 수장고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문화재가 손상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안전하고, 이 사건 건물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는 그간 문화재이전의 경험이 있는 전문학예관들의 감독과 자문하에 전문용역업체를 선정하여 안전하게 이동시킬 계획이다.
바. 사적지정청원에 관하여
문화재관리국장은 신청인들이 제출한 위 사적지정청원에 대하여 1995. 8. 12.자로 불가회신을 하였다.
3. 판단
살피건대, 피신청인들의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철거행위는 관계행정청이 용도폐지처분후에 행하는, 그 성질상 행정작용의 일종으로서 공법적(비사법적)인 사실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신청인들이 주장하는 사유로써 피신청인 대한민국 및 동 철거공사수급인인 피신청인 현대건설을 상대로 민사소송법상의 가처분으로 그 철거의 금지를 구하는 것은 부적법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국가가 행하는 문화재의 보존, 관리 등으로 인하여 국민은 이를 활용하고 그로 인한 이익을 얻는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그 문화재를 보호하고 향유할 이익이 일반국민 개인에게 부여되는 구체적이고 법률적인 이익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신청인들의 이 사건 신청은 권리보호이익도 없다고 할 것인바, 그렇다면 이 사건 신청은 어느모로 보나 모두 부적법하므로 이를 모두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판사 권광중(재판장) 김형두 신광렬